한국과, 아니 계절이 뚜렷한 대부분의 나라들과 계절이 정 반대로 돌아가는 호주는

지금 겨울이다.

 

 

요즘 추워서 집에서도 털이 복슬복슬한 바지와 가디건을 입고 지낸다.

게다가 매일 집에만 있다보니, 겨울잠을 자려고 동굴에 들어와 있는 곰이 된 기분이다.

 

 

호주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지내는 지금,

나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만큼은 코로나를 실감하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슈들을 매일 나눌 사람들도 없고, (카톡으로만..)

내가 호주인 지인도 거의 없다보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

 

나는 작년 9월에 워홀비자로 호주에 도착해, 10월 경 시내에 있는 한 카페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일을 잘 하다가, 계획에 없던 세컨비자 (원래 1년인 워홀비자를 1년 연장하는 것) 를 따기 위해

농장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 일하던 카페에 그만두겠다고 노티스를 냈다.

 

노티스를 낼 때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호주 정부는 빠르게 조치를 취해

처음에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입국을 금지하더니 (아마 자국민은 제외였던듯), 

곧이어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그때 당시는 코로나가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다보니

사람들이 '중국인'을 보면 코로나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였는데,

우리 가게 손님들이 대부분 현지인인데 나는 일하면서 기침을 하기가 엄 청 눈치보였다.

그들이 보기에 내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알 수가 없을테니- 더더욱.

사레가 들려도 기침을 못했던 그 기억..ㅠ

 

그때 강력한 조치 덕분인지 호주는 지금도 확진자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그치만 코로나를 막기 위한 방지책으로 생활에 꼭 필요한 산업 빼고는

문을 닫을 것을 요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시내에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여기서는 코로나를 확진자 수 때문에 실감하기 보다는

정부의 강한 조치 때문에 실감한 게 훨씬 컸다.

 

내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왜 마스크 착용을 장려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마스크가 공급이 정말 부족해서 그런가?

오히려 호주 정부는 마스크 착용을 지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밖에 나가면 마스크를 쓰고 있는건 대부분 동양인이다.

다른 인종 중에서는 약 10%? 혹은 그보다 적은 비율만 마스크를 쓴다.

(최소 내가 경험한 멜번 시내의 인구는 그렇다)

 

정부의 지침에 따라 모든 식음료업종이 테이크어웨이 주문만 받을 수 있게 되면서

평소에 6~7명이 일하던 우리 가게도 하루에 두세명만 있으면 충분하게 되었고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여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워홀러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었다.

신기하게도 그 지침이 실행된 날이 내가 그만두기로 한 날 바로 다음날이었다.

나는 그래서 일자리에서만큼은 코로나를 실감할 기회가 없었다.

결국 이 모든 상황 때문에 농장에서 일하려던 계획도 흐지부지되었지만.

 

호주 정부는 자국민들을 위해서는 많은 보상책을 내놓았고, 한국인인 내가 느끼기엔

진짜 입이 벌어질 정도로 후하게 보상을 해주고 있다.

(이전 직장에서 1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 코로나로 인해 일이 끊겼을 경우

나라에서 2주에 1,500불 씩 지원된다. 이외에도 소규모 비즈니스 지원, 양육비 지원 등 다양하다)

 

반면 유학생이나 워홀러들에게는 전혀 지원이 없었고, (당연하다 생각되면서도 섭섭하다)

호주 총리 스캇 모리슨은 유학생과 워홀러에게 '너희들을 지원해 줄 계획이 없으니 니네 집에 돌아가라' 고 했다.

호주 경제의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경제에 엄청나게 기여하고 있는 유학생들과 워홀러들인데,

자국민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는게 당연한 걸 알면서도 그 발표를 읽었을 때는 기분이 아주 나빴다.

 

지난주부터인가 코로나 관련 지침이 완화되면서 문을 닫았던 쇼핑몰 등이 문을 열고 있다.

여전히 식당이나 카페에서 앉아서 식사를 하지는 못하지만, 밖에 나가면 돌아다니는 사람도 훨씬 많고

분위기 자체가 좀 더 활발해졌다.

 

여전히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았고, 종식되려면 먼 것 같지만 상황은 많이 좋아지고 있다.

최소한 한두 달 전의 그 사재기가 금방 끝난 것은 참 다행이었다.

상황이 훨씬 심각했던 한국은 사재기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여기는 마트에서 휴지 한 롤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2-3주 지속되었었다.

 

지금은 휴지도 많고 고기도 많다. 괜히 그때 손 세정제도 비싸게 사둔게 후회된다.

지금은 데톨 세정제도 마트에 많이 판다.

 

2020년, 숫자도 기억하기 쉽지만 무엇보다 코로나로 아주 인상깊게 기억될 해다.

앞으로 상황이 계속해서 좋아지기만 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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